건강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한가지 이상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여 한마음으로 세워 가는 교회입니다. 지난 ‘성탄축하의 밤’ 행사를 보며, 우리교회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는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각 초원에서 준비한 찬양, 연극, 춤, 국악등.. 다양한 모습에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교인들이 빠짐없이 총동원되어 참여하였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는 교회의 사역에도 이처럼 모두가 함께 동참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간혹 사역을 부탁드리면 시간, 환경 혹은 능력등..을 이유로 고사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에는 다시 부탁하지 않습니다. 교회사역은 고사하는 것이 미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에서 작은 사역이라도 함께 동참한다는 것은 가장 축복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사역의 기회가 주어질 때 좀 부족 하더라도 순종하기로 결심하면,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라고 해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의 ‘무화과 나무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어 두고 열매가 열렸나 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을 지키는 사람에게 “내가 이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고 3년을 기다렸으나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이 무화과 나무를 잘라 버려라. 왜 땅만 버리느냐?” 그러자 과수원지가가 “주인님, 한 해만 그냥 두시지요. 제가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이듬해라도 열매를 맺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 가서 잘라 버리시지요.”
아주 평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큰 교훈이 담긴 비유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과수원지기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또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는 우리들을 나타냅니다. 무화과나무는 척박한 팔레스타인에서는 잘 자라기가 힘든 나무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서는 건조한 땅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포도나무나 종려나무를 즐겨 심습니다. 이런 무화과 나무를 비유로 든 것은 열매를 맺기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과수원지기 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다 포기하고, 잘라 버리라고 하는 순간에도 주님은 나를 믿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이 기회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잘라버리듯 기회가 끝나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주신 기회는 붙들 줄 아는 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019년, 주님이 나를 믿고 기회를 주셨을 때, 최선을 다해 사명 감당하는 예닮 가족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