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출타할때는 가정교회 목사님들의 칼럼을 공유합니다, 테네시주의 주님의 몸된 교회 집회를 위해서 출타하는 이번 주 칼럼은 한국 가사원장이신 이경준 목사님의 칼럼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에 대해 무작정 반박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다른 종교를 그저 무시하지 말고, 다른 종교는 단지 도덕(윤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혜롭게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들어 우리 나라의 기독교 외에 대표적인 종교는 유교와 불교입니다. 유교를 창시한 공자의 가르침의 핵심은 “인의예지신”입니다. 인은 ‘측은지심’으로 불쌍한 것을 가엾게 여겨 정을 나누는 마음입니다. 의는 ‘수오지심’으로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예는 ‘사양지심’으로 겸손해 하며 남을 위해 사양하고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지는 ‘시비지심’으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입니다. 신은 ‘광명지심’으로 중심을 잡고 가운데 바르게 섬으로써 밝은 빛을 냄으로 믿음을 주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모두가 사람이 바르게 살아야 할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지 구원을 말하는 대목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신앙이 아니라 도덕이요 윤리입니다.
불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란 삶의 8가지의 바른 길을 말합니다. 바르게 보기(정견), 바르게 생각하기(정사), 바르게 말하기(정어), 바르게 행동하기(정업), 바르게 살기(정명), 바르게 노력하기(정진), 바르게 관찰하기(정념), 바르게 집중하기(정정). 모두가 바르게 살라는 도덕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종교이든 그들의 가르침은 참 바르고 좋은 가르침이지만, 어느 누구도 사람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서 대신 죽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한 번 죽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우리를 대신하여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다른 종교는 모두 이 세상을 바르게 살라는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도덕적으로 죄가 전혀 없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또한 착한 일을 많이 하거나 고행을 하거나 도를 많이 닦는다고 해서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무조건 받아준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러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시고, 우리를 값없이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만 4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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